오랜만의 문화생활!! 좋아하는 배우님이 나오시는데다가 뮤덕 친구의 최애 배우님이 나와서 겹치는 일정으로 잡아서 보고 왔다. 사실 원작이든 실존인물이든 기반이 되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꼭 확인해보고 관람하는 타입이라 랭보에 대한 이것저것 찾아읽고 시도 읽고 감. 물론 도움이 되긴 했지만 무대에서 보는 랭보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당연히.... 

사실 내 나름대로 랭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한 이미지가 있었고.. 배우님이 그걸 어떻게 살릴지 매우매우 궁금했기도 했다. 내가 전에 본 이 배우님의 극이랑 랭보의 이미지는 전혀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ㅋㅋ

 

1. 내용

 

 랭보와 베를렌느, 들라에 다 예상했던 것과는 성격이 달라서 의외였는데 그래서 더 흥미가 갔다. 배우님의 랭보는 매우 거만하고 또 자신감 넘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매우 큰 일이라는 ! 자신감이 넘치는 랭보였던 거 같음 이런 캐릭터성이 부각되다 보니까 베를렌느에 대한 사랑은 잘 못느꼈던 거 같다 주로 협박(?) 하거나 화내는 느낌이 강했던 거 같고? 사실 랭보에 대해서 찾아봤을 때는 유유자적 방랑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무대의 랭보는 조금 더 진취적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찾아 떠나겠어! 하는 열정이 느껴졌다.

 베를렌느 배우님은 오히려 정 반대의 성향.. 항상..촉촉하고 애처롭고 랭보를 아끼는 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동시에 불안하고 소극적인 모습들.. 자신의 시에 만족하지 못하고 열등감을 가지는 모습들을 정말 잘 연기하셔서 마음이 아팠음 이상하게 권총을 손에 쥐었을 때의 연기들이 정말 기억에 남는 거 같다.. 

 들라에 배우님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갈 때의 성격 차이를 잘 표현해줘서 처음에는 다른 배우님인줄 알았다 현재의 차분한 연기와 랭보 앞에서의 밝고 행복해보이는 연기의 차이가 매우 좋았고.. 왜인 들라에에게 되게 정이 많이 갔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사소한 연기들도 좋았다 걸터앉아있을 때만 해도 베를렌느는 다리를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데 랭보는 활짝 벌리고 껄렁하게 앉아있고 ㅋㅋ이런 부분도 자신감의 차이를 보여주는 거 같아서... 들라에가 집에 왔을 때도 랭보는 냅다 테이블 위에 앉아버리고.. 정말 비범하고 망설임없는 남자다 싶어서 좋았네.. 또 바닥에 같이 글씨 쓸 때도 랭보는 대담하게 휘휘휙!!하게 쓰는데 베를렌느는 구석에 끼적끼적.. 적는 점이 좋았다.. 아.. 그 시 쓰는 장면 정말 .. 좋았어

 

극중에서 랭보가 '악마' 라는 비유를 되게 많이 듣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졌다. 현실적인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순수한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만족감을 제외하고는 주변 평판을 포함해 손해를 볼 것들이 더 많으니까... 순수하게 예술을 잘 하는 재능과 능력도 좋아하지만 파리 문단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다른 활동들로 금전적 여유를 얻는 것이 랭보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었던 거 같음 베를렌느가 여행을 가자는 말을 수락하며 '넌 악마야.' 라고 하자 모자를 받아들고 인사하며 '지옥으로 안내하겠습니다.'라고 받아치는 부분이 참 좋았다.. 

 

" 나는 축복받았고, 동시에 저주 받았네. "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매우 인상적인 문장이라 기억에 남음. 천재적인 시를 쓰는 재능이라는 축복을 받았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랭보가.. 결국 독단적이고 비범한 랭보도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받고 싶어했다는 걸, 그래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베를렌느의 존재가 그렇게 중요했구나.. 하는 생각.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과 이해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게 맞는 거 같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지 않아도 그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를 캐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무엇보다 이해받지 못하는 작품은 외면당하고 유명해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와 왜 랭보는 들라에로 만족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들라에가 있었음에도,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시를 좋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도 왜 랭보는 역경이 함께할 수 밖에 없는 베를렌느와의 길을 선택했는지.. 초반에 모음의 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듯 들라에는 랭보의 시를 좋아하지만 그만큼의 깊은 해석과 이해는 할 수 없고 들라에는 랭보와 영혼이 공명하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진정한 이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

근데 생각해보면 랭보는 늘 투시자가 되고싶다고 하는데 투시자가 되어 모든 걸 꿰뚫어보면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지니까 결국엔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과 더 멀어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랭보가 베를렌느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첫 만남에도 랭보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인사했고 같이 떠나자고 했을 때도 랭보가 손을 내밀었고.. 그런데 마지막 장면 즈음에 들라에가 베를렌느에게 (랭보가 죽은 후의 아프리카에서) 이제 갈까요. 하고 손을 내밀었을 때는 일어나면서 잡지 않았던 점이 인상깊었다 베를렌느를 잡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랭보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들라에는 랭보를 동경하는 느낌의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큰 거 같다 초반부터 들라에가 확실히 랭보의 캐릭터성을 잡는데 크게 기여한 느낌? 들라에의 말과 행동들 때문에 랭보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비범한 인물이라는 게 확 와닿은 거 같아서 좋았던 거 같다.. 

 

2. 구성

 

구성이 매우 재미있다.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는 연출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극에서는 그 전환 포인트를 너무 잘 표현해서.. 랭보의 뒤를 쫓던 (과거의)베를렌느가 뒤에서 부르는 들라에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오는 연출 같은 것. 그 순간에 갑자기 공기가 바뀌며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현재와 과거를 표현하는 거.. 쉽지 않잖아. 라흐헤스트에서는 이런 부분이 조금 헷갈리는 지점이 있어서 확실히 이해가 잘 가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조명

 

조명도 상당히 잘 썼던 거 같음. 기억나는 조명들.. 시작 부분 숲에서 랭보 위로 쨍하게 내려오는 햇빛, 베를렌느와 랭보가 편지를 교환할 때 서로를 비추던 대비되는 온색과 난색의 조명. '초록'이라는 시를 읊을 때 랭보의 주위를 감싸던 연둣빛의 조명... 전체적으로 난색 조명을 자주 쓰는 장면들이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그 외에는 뒤에 커다란 조명판이 있어서인지 본 조명이 꺼지고 조명판에 있는 조명만으로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너무 좋았다. 랭보의 첫 등장씬. 담뱃대를 물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랭보의 장면을 실루엣으로 보여준다거나 하는 장면들.. 뭔가 행동만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는데에 임팩트가 느껴졌다. 

 

4. 그 외 감상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는 랭보와 베를렌느의 관계에서 달과 6펜스나 카미유와 로댕의 관계성이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둘 다 너무 극단적인 예지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에 대한 일편단심적 열정.. 하지만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는.. 그런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카미유와 로댕은 둘 다 동종업계라는 점에서 떠올랐던 거 같다. 이쪽은 정말 파국으로 치닫은 관계에 가깝지만.. 실제로 카미유가 랭보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있어서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