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첫장에서 대뜸 철학이론을 내게 들이미는 탓에 책에 흥미가 떨어진 것도 있었다. 물론 책을 관통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표지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거라 생각했던 잔잔한 분위기와 삶의 교훈을 담은 문장들 대신 지나치게 외설적이며 상세한 묘사들과 제멋대로에 어딘가 흠집이 난 인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마구잡이로 펼쳐나가는 삶의 궤적은 오히려 막장 드라마 쪽에 가깝다고 느꼈다. 당연히 막장드라마 답게 너무 재미있었고 정신이 산만해 한 책을 기본 3개월 동안 붙잡고 있던 나는 이틀만에 이 책을 완독했다. 그만큼이나 흡입력이 좋았다. 등장인물 중 누구도 응원하지도 공감하지도 않은 채, 취향인 소재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을 몰입해서 읽어본 것이 얼마만이던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작가가 내가 느껴본 적도 없는 감정을 이해하고 납득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보며 물가에서 자신에게 떠내려온 아기처럼 느꼈다는 문장을 읽고 무슨 기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용 자체는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기에 벌어지는, 단순한 일상물에 가까웠지만 그 안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신박하고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했다. 때로는 어떤 스릴러물보다 무섭고 끔찍하기도 했고 어떤 철학서보다 삶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기도 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마치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슬들을 꿰어 만든 팔찌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을 때 내 마음 속에 쏙 들게 되는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유명한 책인데는 이유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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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